왕이 숨겨둔 원시의 섬을 걷다 '금오도 비렁길'

                              금오도 비렁길을 걸으면 빽빽한 동백나무숲과 우거진 해송숲을 길동무로 삼음 수 있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kbn연합방송=김진영 기자] 섬 걷기는 특별하다. 바다가 안겨주는 포근한 고립 때문이다. 육지에서 질척거리며 따라오는 일상을 끊어내고 개발의 손길마저 막아준다. 그래서 섬에서는 오롯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사람의 손길이 덜 닿은 숲과 바다를 만나며 오래전 자연의 모습까지 마주할 수 있다.

섬 걷기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길이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 금오도(金鰲島)에 있다. 금오도는 섬의 생김새가 자라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큰 섬으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한다. 섬의 서남쪽 해안을 따라 걷기길이 이어진다. 바로 '비렁길'이다. '비렁'은 여수 사투리로 벼랑을 뜻한다.

비렁길은 본래 주민들이 땔감을 구하거나 낚시를 다닐 때 이용하던 길이었다. 이를 재정비해 2010년 걷기길로 문을 열었다. 이름 그대로 깎아지른 벼랑을 따라 걷는다. 발아래로는 남해가 출렁이고 머리 위로는 숲이 드리운다. 바다와 절벽, 숲이 이어지는 길이다.

함구미항에서 출발해 장지항으로 이어지는 비렁길은 총 5개 코스, 18.5㎞다. 코스 사이에 끊어진 구간이 있어 완주하려면 약 24㎞를 걸어야 한다. 내공이 있는 도보여행가라면 7~8시간 정도면 완주할 수 있다. 고저 차가 크지 않아 거리만큼 걷기가 버겁지는 않다. 부담 없이 섬 길을 즐기고 싶다면 3~4코스만 걸어도 된다. 6.7㎞, 3시간이면 충분하다.

                                                                    3코스에서 볼 수 있는 갈바람통. 사진 한국관광공사


100년 전까지 사람이 살지 않던 섬

각 코스는 풍경과 품은 이야기가 다르다. 1코스의 주인공은 미역널방이다. 오솔길을 따라 살짝 올라가면 금오도에서 손꼽히는 해안 절경이 발밑으로 펼쳐진다. 주민들이 바다에서 거둔 미역을 널어 말리던 곳이라 미역널방이란 이름이 붙었다.

길에서는 금오도에 남아 있는 독특한 장례문화인 '초분'도 만날 수 있다. 초분은 시신을 바로 땅에 묻지 않고 풀이나 짚으로 임시 무덤을 만들어 모셨다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뼈를 추려 다시 묻는 풍습이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널찍한 암반 신선대에서는 잠시 걸음을 늦춰도 좋다. 2코스가 시작되는 두포마을에는 금오도 개척 100주년 기념비가 서 있다. 금오도는 조선시대 왕실에 의해 숨겨졌던 섬이다. 섬 전체를 '봉산(封山)'으로 지정해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막았다. 궁궐을 짓거나 필요한 나무를 벨 때만 사람을 들여보냈다. 그만큼 원시림이 울창했던 섬이다.

봉산이 해제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다. 이후 1885년 관의 포수였던 박씨가 세 아들과 함께 금오도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개척이 시작됐다. 지금의 마을과 길 뒤편에는 이런 섬의 역사가 켜켜이 남아 있다.

                                                                      2024년 신규 조성된 4코스 출렁다리. 사진 김희순
                                        금오도 비렁길은 에메랄드빛 남해 바다와 다도해의 섬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사진 김희순


에메랄드빛 바다와 벼랑의 환상 조화

두포마을에서 30여 분을 걸으면 굴등전망대다. 아찔한 벼랑 돌출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 서면 전함을 타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고도감이 느껴진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던 촛대바위를 지나면 비렁길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3코스가 이어진다.

굽이굽이 벼랑을 도는 길에서 명품송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해안 풍광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빽빽한 동백나무숲과 대나무숲도 길동무가 된다. 겨울이면 붉은 동백꽃이 길을 물들이고 가을에는 노란 털머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아찔한 공중을 가로질러 절벽과 절벽을 잇는 비렁다리도 빼놓을 수 없다. 파도가 절벽을 칼로 잘라낸 듯한 갈바람통전망대에 서면 남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4코스 역시 시원한 조망이 이어진다. 탁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보면 2024년 완공된 새로운 출렁다리를 만난다. 바닥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어 다리 아래로 휘몰아치는 파도를 볼 수 있다. 

마지막 5코스는 앞선 길과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망산(336m) 자락을 휘돌아가는 길이라 제법 등산하는 맛이 난다. 땀 흘리며 산길을 오르면 보상이 기다린다. 가까이 소부도와 대부도, 안도부터 멀리 연도까지 금오열도의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현우 월간<산> 기자


                                                                               금오도 가는 길
   금오도 가는 길
금오도로 들어가는 뱃길은 3가지가 있다. 여수항, 백야항, 돌산도 신기항에서 배가 뜬다. 어디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도착하는 항구와 비렁길 접근성이 달라진다. 여행 일정에 맞춰 뱃길을 고르면 된다.

먼저 여수항과 백야항에서 출발하면 비렁길 1코스 시점인 함구미항으로 바로 갈 수 있다. 여수항에서는 약 1시간 30분, 백야항에서는 약 30분 걸린다. 다만 운항편수가 하루 4~5편으로 신기항보다 적어 출발시간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신기항 배편은 하루 9편으로 많고 운항시간도 30분 정도로 짧지만 함구미항으로 바로 가지 않고 여천여객터미널로 간다. 배에서 내린 뒤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 함구미항으로 이동해야 한다. 버스로 10분 거리다. 다행히 오전 배편이면 배가 닿는 시간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크게 불편하진 않다. 동하계, 평일 및 주말 등에 따라 배 시간이 조금씩 달라지므로 출발 전에 여수시 관광정보나 해당 선사의 운항시간을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섬 내 대중교통 연락처

남면버스 (061)692-8278, 남면택시 (061)666-2651~2

여수세계섬박람회 활용하세요!

9월 5일부터 11월 4일까지 열리는 여수세계섬박람회를 활용하면 더욱 알찬 걷기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여객선 운임은 반값 할인되고(예산 소진 시 조기 종료), 셔틀버스(여천~안도 순환)도 운영된다. 또 금오도 비렁길 스탬프 투어(디지털로 진행, 기념품 제공), 섬스팟 투어(버스를 활용한 명소 탐방), 금오도 페스티벌(월 2회씩 총 4회, 우학리 물양장서 진행), 캠핑(수요일 휴무, 주 6회 진행), 명상 워킹 및 방풍 족욕(비렁길 1코스에서 진행) 등의 프로그램도 체험해볼 수 있다.

kimjy4385@ikb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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